“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 The buck stops here.
차상은, 엔지니어, 인체공학자(PhD, PE), 휴먼에러/안전 칼럼니스트, 컨설턴트(산업보건, 직업병), TBC 스마트안전교육원 전문위원(교수)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집무실 책상에 항상 ‘The Buck Stops Here’라는 팻말을 뒀다. ‘책임을 떠넘길 곳이 없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의미였다. 원래 ‘Buck’은 숫사슴이란 뜻인데 카드 게임 때 딜러에게 사슴 뿔 칼을 넘겨주는 전통에서 ‘책임’이란 뜻이 생겼다고 한다. 영어로 ‘Pass the buck’은 책임을 전가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2022년 방한한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선물하기도 한 바로 그 문구다. 1945년 4월 12일, 해리 트루먼은 미국의 제33대 대통령직에 취임했고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통령 루스벨트가 부통령도 모르게 추진하고 있던 프로젝트가 있었다. 인류 역사상 최초 원자폭탄을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 유명한 세기의 참혹한 전쟁사였던 ‘Manhattan Project’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공동으로 참여한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으로 사상 최초의 핵실험을 승인한 대통령으로 그 해 8월 6일 일본의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각각 원자폭탄이 떨어진 것도 트루먼의 승인을 요하는 일이었다. 얼마 후 한 천재가 백악관을 찾아 왔다. 맨해튼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는데 기여한 결정적인 인물, J. 로버트 오펜하이머가 바로 그였다. 트루먼은 오펜하이머가 일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책임은 온전히 자신이 짊어져야 한다. ‘모든 책임은 내가 진다’는 말은 그런 뜻이었다.
직장인의 공포, 시말서… 반성의 기미가 없다고 다시 쓰라는데, 흔히 업무상 과실 등으로 회사에 손해를 입히는 행위를 '시말서 감'이라고들 한다. 회사의 정당한 업무 지시를 따르지 않거나 회사 규정을 어겨도 마찬가지다. 시말서는 제출을 지시 받은 해당자나 지시하는 상사나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대체로 징계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직장의 취업규칙에 어떻게 규정되어 있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시말서는 징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래서 시말서 제출로 마무리되고, 그냥 넘어간다면 여간 다행이 아니다. 2010년 1월 대법원은 "사죄문 또는 반성문 성격의 시말서 제출 명령은 헌법이 보장하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강제로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해 업무상 정당한 명령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이를 거부했다고 징계를 하는 것 또한 부당 징계가 된다.
최근 국내 안전과 환경 관련 법 및 규제가 점점 강화되고 있고, 세계적으로 ESG 경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져가고 있으며,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 따라 사업주의 의무와 책임이 강화되고 단순히 법적 의무를 넘어 경영층이 조직 전반에 합리적인 안전문화와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의무와 책임감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필자는 지난해 어느 사업장을 대상으로 안전문화(Safety Culture) 진단에 참여하면서 진단의 주요 프로세스 범주에 ‘리더십’, ‘조직운영’ 및 ‘실행’ 등에 대한 설문조사, 자료/기록 검토, 현장 실사 그리고 경영층·중간관리자·근로자 등을 대상으로 인터뷰를 진행하였다. 리더십의 종합 평가를 위하여 경영층의 의지와 참여, 회사의 안전방침과 원칙, 회사의 안전목표 및 실행계획, 그리고 회사의 안전 관련 모든 절차와 표준 등에 대한 분야를 심도 있게 들여다보고 비교·조사하였다. 그리고 강점과 약점을 논하고 정리하였다.
기존의 대다수 안전진단은 사고 또는 재해발생과 재발방지대책을 중심으로 위험성평가 범주에 준하여 외부 진단기관의 성격과 진단 참가요원의 전문성 또는 성향에 따라 일관성과 객관성이 결여될 수도 있고, 대부분의 진단과정이 법 규제 범위 내에서 건수 또는 지적 위주의 결말로 정리하고 보고하는 형식이 비일비재하다. 안전문화 진단의 경우 앞서 언급한 3가지 범주의 강점과 약점, 주요 개선에 필요한 권고사항과 우선순위를 중심으로 진행하였다. 듀폰사의 안전경영시스템 모델과 진단 범위의 경우에도 안전문화와 위험관리로 구분하여 제시하고 있다. 바스프사의 안전철학에 언급된 ‘안전한 일터는 고용의 조건이다’라는 문구에 부합하려면, 기업의 안전 관련 리더십의 정확한 판단력과 실행력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항목이고 주요 경영관리 사안이 될 수도 있다.
여기서 리더에게 필요한 자질인 ‘정확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한 인터비즈의 자료를 인용하면,
첫째가 ‘학습’이다. 주의 깊게 듣고 비판적으로 읽는 습관을 지적하고 있다. 어느 기업이나 리더들은 정보 또는 업무 과부하 상태일 경우가 많을 것이다. 경영층이 주기적으로 현장방문과 이행성 점검, 구성원의 안전역할과 책임 부여 및 실행관리를 잘 하고 있는지 파악도 중요하다.
둘째, ‘경험’이다. 관련 경험을 활용하되 너무 좁게 보지 말라고 지적하고 있다. 의사결정 과정에서 관련 데이터와 증거, 경험은 참고하되 경험이 때로는 독이 될 수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사고 발생의 경우 결과 위주보다는 과정을 다시 짚어보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셋째, ‘객관성’이다. 자신 안의 편견을 확인하고 그에 도전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좋은 판단력에는 지적 또는 감정의 객관성 유지가 중요한 것이다. 사고의 원인과 과정을 조사하면서 사람에 대한 편견이 때로는 독이 될 수도 있다. 확증편향은 편견을 확대할 수도 있고 최근 행동경제학, 심리학, 결정과학 분야의 연구 등에서 기준점, 확증, 위험회피, 지난친 위험수용 등의 인지편향들은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넷째, ‘결과내기’이다. 실행 가능성을 고려하여 처리하라고 지적하고 있다.
모든 선택이 전략적으로 올바르다 할지라도 어떻게(How) 그리고 누구(Who)를 통하여 실행할지 판단하지 않으면 위험한 것이다. 위험성평가의 주요 목적은 숨겨져 있거나 발견하진 못한 잠재된 위험원인을 찾아내고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일차적 수단이다. 업무수행 관련 근로자의 불안전한 행동이나 가동 설비의 불안전한 상태를 찾아내고 안전활동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 매뉴얼 등의 제시 및 교육·훈련이 현장에서 요구되고 필요한 행동변화 체험 위주의 과정 편성과 프로그램 진행이 되었는지 재고해야 한다.
리더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에 대한 잡코리아의 조사에서 1위는 ‘책임감’이었다. 다음으로 ‘상황판단력’, ‘소통능력’, ‘전문성’, ‘포용력’ 등의 순으로 발표하였다. 리더는 항상 시대를 초월하고, 애매모호함에 대해서도 잘 대응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리더는 모호함에 대한 자신들의 반응을 잘 관리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콘 페리(Korn Ferry)사는 고객사에게 경영진의 리더십을 평가하기 위하여 주요역량(Competencies), 경험/경력(Experiences), 성품/기질(Traits), 동기부여 요인(Drivers) 등 4가지 차원에서 검증된 툴을 활용해 정확한 분석 데이터를 제공하며, 리더십 6단계로 ‘앞일에 대한 예측’, ‘실시간으로 방향성 수정’, ‘지속적인 소통’, ‘듣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경청’, ‘미래에 적용 가능한 경험으로부터의 학습’, ‘타인을 성장시키기 위한 자기 발전’ 등을 제안하였다.
캐나다 에너지 규제기관(CER)에서 발표한 안전문화 평가 가이드에서 안전문화의 위협 요소는 ‘생산압박’, ‘자만심(안주함)’, ‘편견의 정상화’, ‘부적절한 시스템과 자원에 대한 관용’ 등이며 반대로 안전문화의 방어적 요소로는 ‘헌신적인 안전 리더십’, ‘경각심(경계)’, ‘권한부여와 책임’, ‘회복성’ 등을 제시하였다.
올 한해 일터의 사고를 근원적으로 예방하고 생산적이고 발전적인 리더십을 통한 목표 달성의 과제에는 시각적 경영의 의지 곧 헌신적인 리더십을 우선으로 하여 생산과 안전의 병행과 공존, 관리감독과 학습조직의 내실화, 전사원 및 협력사의 안전에 대한 동참과 연계한 역량관리, 안전의 효과적 소통을 통하여 어디에서든 잠 못 이루는 밤이 찾아오지 않기를 희망한다.
< 이 원고는 월간 '안전세계'에 투고 및 게제된 칼럼 원고입니다>